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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팀에게도 힘든 시기는 찾아온다

기사발행: 2013년 1월 10일, 목요일, 13.20중앙유럽 표준시
스포르팅 클럽 데 포르투갈과 AEK 아테네 FC가 부진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강팀에게도 힘든 시기는 찾아온다는 사실이 입증된 셈. UEFA.com이 과거 불의의 강등을 당했던 팀을 살펴봤다.
강팀에게도 힘든 시기는 찾아온다
아틀레티코의 주장 키코가 2000년 강등이 확정된 후 넋이 나간 표정으로 응시하고 있다 ©Getty Images

UEFA.com 특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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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발행: 2013년 1월 10일, 목요일, 13.20중앙유럽 표준시

강팀에게도 힘든 시기는 찾아온다

스포르팅 클럽 데 포르투갈과 AEK 아테네 FC가 부진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강팀에게도 힘든 시기는 찾아온다는 사실이 입증된 셈. UEFA.com이 과거 불의의 강등을 당했던 팀을 살펴봤다.

포르투갈 리그에서 5위 이하의 성적을 거둬 본적이 없는 스포르팅 클럽 데 포르투갈은 이번 시즌 리그에서 고전 중이다. 한편, 그리스 빅 클럽 가운데 하나로 리그 최저 성적이 7위였던 AEK 아테네 FC는 클럽 사상 최초로 강등 위기에 처했다. UEFA.com은 가장 큰 성공을 거둔 팀조차도 가끔 견뎌내야만 하는 강등의 아픔과 수모를 살펴보았다.

독일: 1. FC 뉘른베르크 (1967/68)
뉘른베르크 감독 막스 메르켈은 잘 훈련시킨 단 15명의 정예부대로 1968년 돌풍을 일으키면서 사상 최초 분데스리가 우승과 8번째 독일컵 우승을 거머쥐었다. 하지만 유럽대회를 준비하면서 이들 선수 중 10명을 팀에서 방출했고 그 결과 1968/69 시즌 대 재앙을 겪었다. 유럽피언 챔피언 클럽스 컵에서 AFC 아약스에 패해 탈락한 뒤, 리그 17위로 추락하면서 디펜딩 챔피언으로는 사상 최초로 강등되는 수모를 겪었다. 1954년 FIFA 월드컵 우승을 차지했던 뉘른베르크의 전설 막스 몰록은 "마치 악몽을 꾼 것 같았다"고 말했다. 팀 주장 하인츠 슈트렐은 "우리는 다음 시즌 좋지 않은 경기장에서 지팡이로 우리를 조롱하는 팬들을 등뒤로 하고 뛰고 있을 때야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깨달았다"고 덧붙였다.

잉글랜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1973/74)
새로 부임한 토미 도허티 감독은 1972/73 시즌 맨유를 강등권에서 탈출시키면서 침몰 위기의 팀을 구해냈다. 하지만 스타 공격수 데니스 로가 그 해 여름 자유계약 선수로 맨체스터 시티 FC로 이적하면서 골 가문에 시달린 맨유는 1973/74 시즌 힘든 시즌을 되풀이 한다. 그리고 과거 "올드 트래포드의 왕"으로 군림했던 로는 발 뒤꿈치로 결승골을 기록하면서 친정팀에 1-0 홈 패배를 안겼고, 그 결과 맨유는 최하위에서 두 번째로 밀려나면서 강등이 확정됐다. 로는 자신을 결코 용서할 수 없었다고 말한다. 골을 넣은 후 충격에 빠져 교체 아웃 된 그는 이후 "슬픔을 가눌 수 없었다. 이런 일이 일어나길 원하지 않았다. 이 감정이 얼마나 오래 지속됐는지 아나? 그 경기를 치른 지 벌써 30여 년이 지났다. 이 오랜 시간 동안 아픔을 간직하고 있다"고 말했다.

러시아: FC 스파르타크 모스크바 (1976)
구소련은 1976년에 봄과 가을 2회에 나누어 각각 프로축구 리그를 치렀다. 전국에서 가장 큰 인기를 누리던 구단은 영향력 있는 니콜라이 스타로스틴 기술이사의 퇴장과 함께 일부 선수들이 이탈하면서 비참한 춘계리그를 보냈다. 동계리그는 참사였다. 당시 구소련 리그 통산 9회 우승팀인 스파르타크 모스크바는 신예 감독인 아나톨리 크루티코프의 경험 부족과 재정난이 겹치면서 봄까지 전체 16개팀 중 14위에 머문 뒤 가을에는 단 승점 13점을 획득하는 데 그쳤다. 그 결과, 스파르타크 모스크바는 FC 디나모 민스크와 2부 리그로 강등되는 운명을 맞았다. 향후 전설적인 감독이 된 콘스탄틴 베스코프가 이듬해에 팀의 승격을 이끌었고, 1979년에 열 번째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스파르타 선수로 활약하던 발레리 글라딜린은 당시 상황에 대해 "대개편이 없었다면 팀이 그 정도로 주목을 받았을지 알 수 없다"고 회상했다. "하지만 새로운 감독님이 부임했고 팬들은 깨어났다. 그때부터 시작된 스파르타크의 성공은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프랑스: 올랭피크 드 마르세유 (1979/80)
마르세유의 우상인 가스통 드페르 시장은 마르세유를 대표하는 축구팀의 2부 리그 강등 소식을 듣고 "진정한 슬픔이 도사린다"고 말했다. "마르세유는 일종의 비극을 경험했다. 이 도시의 시민들은 그들의 축구팀을 진심으로 사랑한다." 전문가들조차 예측하지 못한 결과였다. 쥴스 붕카 감독은 새 시즌 개막에 앞서 각국의 국가대표 선수들이 포진한 스쿼드에 몇몇 선수를 추가로 영입해 전력을 강화했다. 당시 마르세유에 디디에 식스와 마리우스 트레소르, 빅토르 붕카, 프랑수아 브라치, 마르크 베르돌이 입단했다. 당초 우승후보로 꼽히던 마르세유의 꿈은 곧 무산됐고 팀은 하위권으로 추락했다. 시즌 중반에 장 로빈이 붕카 대신에 구원자로 들어섰지만, 결국 마르세유는 승점 24점으로 전체 20개팀 중 19위로 시즌을 마감했다. 이듬해에 젊은 선수들로만 스쿼드를 꾸려 1983/84 시즌에서야 리그 1으로 승격에 성공했다.

이탈리아: AC 밀란 (1981/82 시즌)
10번째 스쿠데토를 들어올린 지 3년이 지났을 때, 밀란은 리그 최하위에서 세 번째 자리까지 밀려나며 세리에 A에서 강등을 당했다. 당시 밀란에는 1984년 이탈리아 대표팀 소속으로 월드컵 우승을 경험한 프랑코 바레시와 풀비오 콜로바티, 그리고 마우로 타소티 같은 미래의 스타들을 보유하고 있었다. 또한 밀란은 공격진에 스코틀랜드 국가대표 조 조르단이 있었음에도 불구, 24경기에서 불과 21골밖에 기록하지 못하며 시즌을 마감했다. 그들은 막판 5경기에서 3승을 거뒀지만 [세리에 A에 잔류하기에는] 충분치 못했다. 1978/79 시즌 챔피언에 올랐을 당시 팀에서 핵심선수였던 미드필더 왈테르 노벨리노는 "우리가 그리 나쁘게 시즌을 출발한 것은 아니었다. 이러한 경우에는 정신적인 측면이 결정적이다. 두려움을 가지고 경기하기 시작하면, 결국 실수를 하게 된다. 당시엔 경기하는 게 무서웠다. 특히 우리 팬들이 우리에게 야유하기 시작했을 때는 더욱 그랬다"고 회상했다.

스페인: 클럽 아틀레티코 데 마드리드 (1999/2000 시즌)
만사나레스 강둑에 홈구장이 자리잡고 있는 클럽 아틀레티코 데 마드리드는 라 리가와 코파 델 레이 우승으로 더블을 달성하고 나서 4년 뒤에, 1933/34 시즌 이후 처음으로 2부 리그로 강등되었다. 5월 7일 레알 오비에도와 2-2로 비긴 경기에서 지미 플로이드 하셀바잉크의 PK 실축은 로히블랑코스[아틀레티코의 별칭]의 마지막을 의미했다. 하지만 팀에 피해를 초래한 것은 클라우디오 라니에리 감독과 더블 달성을 해낸 라도미르 안티치 감독 하에서 시즌 내내 얻어낸 변변치 않은 성적과 더불어 그 때까지 이어간 13경기 연속 무승기록이었다. 오비에도전 이후 주장 키코는 "평상시 '힘 내, 고개를 들라구'라는 외침이 있었던 라커룸에는 전적으로 침묵만 흘렀다. 우리는 모두 2부 리그 팀으로 다음 경기에 출전할 것임을 알고 있었다"고 밝혔다. 아틀레티코의 비참함은 그들이 코파 델 레이 결승에서 RCD 에스파뇰에 패하고 시즌을 마감하며 끝났다.

최종 업데이트: 13년 1월 11일 4.31중앙유럽 표준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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