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EFA 유로 2012 마지막까지 최고의 모습을 선보인 스페인이 키에프에서 4-0 대승을 거두고 사상 최초로 메이저 대회 3연패라는 위업을 달성했다.
긴장감 넘쳤던 넉아웃 무대를 헤쳐오는 동안 기력을 소진한 이탈리아를 상대로, 디펜딩 챔피언 스페인은 다비드 실바가 그로서는 드물게 머리로 선제골을 터뜨린 바로 그 순간, 전반 14분부터 경기를 장악했다. 활기가 넘쳤던 두 번째 골은 전반 종료를 앞두고 불요불굴의 모습을 보인 조르디 알바로부터 나왔다. 알바는 생애 최초로 국제 무대에서 득점을 올렸으며, 아주리 군단[이탈리아 대표팀의 별칭]은 넘기 힘든 산맥을 마주한 셈이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이탈리아는 마지막 세 번째로 교체 투입됐던 수비수 티아고 모타가 들것에 실려 나가면서 마지막 28분 동안 열 명으로 싸워야만 했다. 스페인은 페르난도 토레스와 후안 마타를 투입해 끝까지 공격적으로 나섰다.
이번 결승전은 대단히 창조적인 마인드를 갖춘 두 선수이자, 각각 중원 지휘자 중 최고로 손꼽히는 챠비 에르난데스와 안드레아 피를로의 대결로 큰 흥미를 모았다. 그러나 경기 초반은 챠비의 원맨쇼였다. 스페인 대표팀 등번호 8번 챠비는 경기가 시작되기 전부터 지휘봉을 잡았으며, 안드레스 이니에스타와 절묘하게 어우러져, 이제는 모두에게 친숙할 라 로하[스페인 대표팀의 별칭] 특유의 짧고 경쾌하게 이어지는 움직임을 주도적으로 이끌었고, 이탈리아는 점점 뒤로 깊숙하게 후퇴해야만 했다. 경기장을 가득 메운 63,170여 명의 관중들 중 상당한 부분을 차지한 스페인 서포터즈는 스페인 특유의 '올레' 응원을 펼치기 시작했으며, 전반 14분 챠비에 이니에스타 콤비는 가공할만한 위력을 발휘했다.
비록 높이 뜨고 말았지만 전반 14분이 되기 전 직접 슛을 시도해 감각을 끌어올린 챠비가 이니에스타에게 패스했고, 세스크 파브레가스는 이니에스타가 건넨 묵직한 무게감이 실린 패스를 받아 손쉽게 지오르지오 키엘리니를 돌파해 페널티 지역 우측 안쪽으로 진입했다. 여전히 정말 할 일이 많은 상황이었지만, 스페인은 이를 너무나 쉽게 해냈다. 파브레가스가 날카롭게 뒤로 돌린 공을 신장 170cm에 불과한 실바가 달려들며 머리로 이탈리아 골망을 흔든 것. 그리고 이는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인 키엘리니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폴란드와 우크라이나에서 열린 이번 대회 기간 내내 허벅지 문제로 고생했던 그가 끝내 굴복하고 만 것이다.
가뜩이나 체력 저하로 다리가 무거운 이탈리아 대표팀으로서는 이중고를 겪게 된 셈이었지만, 곧 인상적으로 반격을 펼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역시 이탈리아의 원동력, 피를로가 있었다. 이탈리아는 피를로의 박자에 맞춰 전열을 가다듬었으며 그가 울리는 북소리는 마치 공격에 나서라는 뿔나팔 소리처럼 들렸다. 그러나 그 효과는 크지 않았다. 사실, 전반전을 통틀어 피를로가 선보인 가장 중요한 공헌은 마지막 순간까지 이니에스타를 추격해 결정적인 슛을 막은 것이었다. 올해 33세인 노장 플레이메이커 피를로는 그에게 허용된 만큼 노력했으며, 실제로도 그렇게 했지만, 홀로 운동장 모든 곳에 나타날 수는 없었다.
한편, 스페인의 두 번째 골은 너무나도 쉽게 터졌다. 이케르 카시야스 골키퍼가 걷어낸 것을 운동장 중간 터치라인 근처에 섰던 파브레가스가 머리로 연결했고, 그 공을 잡은 알바가 다시 챠비에게 건넨 뒤 적진으로 쇄도했다. 아주리 군단 수비진은 이를 눈치채지 못한 듯했고, 항상 그러했듯이 흥미롭고 박식한 모습의 챠비는 FC 바르셀로나 새 동료가 된 알바를 향해 절묘한 패스를 건넸다. 알바의 깔끔한 왼발 마무리슛은 카를레스 푸욜과 함께 관중석에서 경기를 지켜보던 다비드 비야까지 기쁘게 하기에 충분했다.
스페인은 자그만치 92년 동안 정규시간 90분 내에 실전에서 아주리 군단을 꺾은 적이 없었지만, 이번 승리는 무엇으로도 막을 수 없는 필연으로 보였다. 그러나 이탈리아는 그때까지도 포기하지 않았다. 3주 전 1-1 무승부로 끝난 양 팀의 첫 대결에서 득점포를 쏘아 올렸던 안토니오 디 나탈레가 안토니오 카사노를 대신해 투입됐고, 그는 6분 동안 두 골을 넣을 수도 있었다. 첫 번째 기회에서 디 나탈레가 선보인 헤딩슛은 결코 쉽지 않은 장면이었지만 더욱 잘 해낼 수도 있었다. 디 나탈레는 리카르도 몬톨리보가 공간을 장악한 그를 발견하고 공을 건넸을 때 기회를 잡았지만 카시야스 골키퍼의 선방에 막히고 말았다.
그러나 경기를 원점으로 되돌리려던 이탈리아의 실낱같은 희망은 티아고 모타가 들것에 실려 나가면서 사라지고 말았다. 마치 암흑으로 가득 찬 터널로 들어가는 꼴이었다. 그를 막던 모타가 사라지자 자유롭게 된 챠비는 다시 경기를 조율하기 시작했고, 경기 종료 6분 전까지 느린 템포로 지휘봉을 휘두르던 챠비는 갑자기 속도를 높여 크레센도로 빠르기를 바꿨다. 챠비는 중원에서 피를로와 맞서 공을 빼앗은 뒤 UEFA 유로 2008 결승전에서 결승포를 기록했던 토레스가 다시 한 번 결승전 득점을 올리도록 도왔다. 이는 아직까지 아무도 해내지 못한 일이었다. 이후 챠비는 토레스와 함께 마타의 쐐기골을 합작했다. 대승을 확정하는 순간이었고, 4년 동안 이어진 스페인 천하가 다시 한 번 전 유럽을 호령하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