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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딩크, 그 황금빛 발자취를 돌아보다

기사발행: 2012년 11월 29일, 목요일, 9.40중앙유럽 표준시
이번 여름 감독 생활에서 은퇴하겠다고 밝힌 거스 히딩크의 의견에 FC 안지 마하치칼라가 반대 의견을 내비쳤다. 히딩크 감독은 여전히 거취를 심사숙고하고 있다. 그렇지만 UEFA.com은 빛나는 히딩크 감독 최고의 순간을 꼽았다.
기사 : 베렌트 숄텐
히딩크, 그 황금빛 발자취를 돌아보다
거스 히딩크 (PSV 아인트호벤) ©Getty Images
 
 
기사발행: 2012년 11월 29일, 목요일, 9.40중앙유럽 표준시

히딩크, 그 황금빛 발자취를 돌아보다

이번 여름 감독 생활에서 은퇴하겠다고 밝힌 거스 히딩크의 의견에 FC 안지 마하치칼라가 반대 의견을 내비쳤다. 히딩크 감독은 여전히 거취를 심사숙고하고 있다. 그렇지만 UEFA.com은 빛나는 히딩크 감독 최고의 순간을 꼽았다.

거스 히딩크 감독이 네덜란드 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이번 시즌을 끝으로 은퇴하겠다는 의사를 밝혔지만 FC 안지 마하치칼라는 사의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30년 감독 생활을 마무리하려는 히딩크 감독. 그는 유럽을 포함한 대륙을 오가며 7개 클럽과 5개의 국가대표팀을 지휘했다. 올해 66세인 히딩크 감독은 "우리는 다양한 옵션에 대해서 의견을 나누었다. 나는 이제 젊지 않으며 내년에 무슨 일이 생길지 알지 못한다. 그러나 내 경력을 마감하겠다고 단호하게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이번 시즌을 끝으로 은퇴하겠다는 것은 하나의 옵션"이라고 말했다. 그는 여전히 다음 행보를 고민하고 있지만, UEFA.com은 그의 빛나는 감독생활을 정리해 보았다.

1988: PSV 아인트호벤
1987년 3월, 당시 40세였던 히딩크는 '데 그라프샤프 [현역시절 처음으로 몸담았던 팀이자, 코치로서 지도자 수업에 나섰을 때 첫 부임지]'에서 이미 경험이 있었던 코치직에서 벗어나 PSV 아인트호벤 감독으로 부임했다. 간판스타 뤼트 굴리트가 AC 밀란으로 이적했는데도 불구하고, 히딩크가 이끌던 PSV는 한스 판 브로이켈렌와 로날트 쿠만, 쇠렌 레르비와 빔 키프트, 그리고 에릭 게레와 게랄트 파넨부르크 같은 선수들과 함께 모든 영광을 거머쥐었고, 승리의 행진은 이듬해까지 계속됐다. 네덜란드 리그 2관왕을 차지한 데 이어 FC 지롱댕 드 보르도와 레알 마드리드 CF를 탈락시켰고, 슈투트가르트에서 열린 결승전에서 승부차기까지 가는 접전 끝에 SL 벤피카를 누르고 유럽피언 챔피언 클럽스 컵 정상에 올랐다. 판 브로이켈렌은 결정적인 PK를 막는 수훈을 올렸다.

히딩크는 "우린 결코 우승후보가 아니었다. 우린 어린 선수들을 많이 보유한, 알려지지 않은 팀이었다. 분위기가 굉장히 좋았다. 선수 모두가 서로를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고 뛰어들 분위기였고, 그것이 유럽피언 컵 제패로 이어졌다"고 회고했다.

1998: 네덜란드
페네르바체 SK와 발렌시아 CF 감독을 거쳐, 히딩크는 1995년 오렌지 군단 [네덜란드 대표팀의 별칭] 사령탑에 올랐다. 유로 본선 8강에서 고배를 마셨던 네덜란드는 프랑스에서 열린 1998 FIFA 월드컵에서 드라마와도 같은 명승부를 펼친 끝에 8강에서 아르헨티나를 꺾었고, 준결승에서 당시 '디펜딩 챔피언' 브라질을 만났다. 히딩크 사단은 호나우두에게 선제골을 허용했지만 경기 막판에 터진 파트리크 클루이베르트의 동점포로 경기를 원점으로 돌렸다. 그러나 승부차기에서 필립 코쿠와 로날드 데 보어의 슛이 막히면서 사상 세 번째 결승 진출의 꿈을 접어야 했다. 하지만 오래도록 인구에 회자할 멋진 기억들을 남겼고, 특히 아르헨티나와의 8강전에서 터진 데니스 베르캄프의 아름다운 결승골이 그러했다.

"결승에 무척 가깝게 다가섰다. 정말 부끄러운 일이다. 우리만의 경기를 펼쳤고 무엇보다도 대회 전반에 걸쳐 훌륭한 모습을 보였다. 우린 정말이지 전세계에 굉장한 인상을 남겼다."

2002: 대한민국
1998년 레알 마드리드 CF 수장으로 유럽/남미 컵 정상에 올랐던 히딩크의 다음 목적지는 2002 월드컵 공동 개최국인 대한민국이었다. 그때까지 대한민국은 당시까지 진출한 네 번의 본선에서 단 1승도 올리지 못하고 조별리그에서 번번이 탈락했던 나라였지만 히딩크가 작은 기적을 일으켰다. 대표팀 소집에 헌신적으로 임한 선수들은 훈련장에서도 마찬가지였고, 당시 세계 축구계를 선도하던 강팀과의 친선전에서도 이를 악물고 구슬땀을 흘렸다. 결국 히딩크는 세계축구 역사상 유일하게 월드컵 준결승에 오른 첫 아시아 팀을 탄생시켰다. 비록 준결승전에서 독일에 패해 결승 문턱을 넘지 못했지만 히딩크는 대한민국에서 살아있는 전설이 됐고, 광주 월드컵 경기장이 그의 이름을 기려 명명되는 기쁨을 누렸다. 또한 명예 대한민국 시민권을 획득한 첫 번째 외국인이 되는 영예를 누리기도 했다.

히딩크는 "나는 국제적인 시민"이라고 운을 뗀 뒤, "실로 대단한 영광이다. 한국 국민들을 대단히 존경한다. 월드컵에서 대한민국 대표팀이 이룬 업적은 한국 전체에 엄청난 영향을 줬다"고 말했다.

2005: PSV
처음으로 PSV 사령탑에 올랐을 때보다 지도자로서 무척이나 원숙해진 히딩크가 2002년 월드컵 이후 아인트호벤으로 복귀했다. 이후 그는 세 번이나 네덜란드 리그 우승을 차지했으며, 2004/05 시즌에는 17년 전 이룩했던 과업에 거의 근접하기도 했다. 자국 리그에서 이미 2관왕을 달성한 PSV는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전까지 한 계단만을 남겨둔 상황이었다. 1차전에서 AC 밀란에 2-0 완패를 당했던 PSV는 홈에서 열린 리턴 매치에서 두 골을 넣어 빚을 갚았지만, 종료 1분 전 마시모 암브로시니에게 한 골을 더 허용하고 말았다. PSV는 비록 필립 코쿠가 합계 점수를 동점으로 만드는 득점포를 쏘아 올렸지만, 원정 다득점 원칙에 따라 4강에 만족해야만 했다.

"우린 세계 수준의 팀을 구축했고 끝까지 온 힘을 다해 싸웠다. 하지만 결정적인 치명타가 터지지 않았다."

2009: 첼시
호주를 2006년 월드컵 16강으로, 러시아를 UEFA 유로 2008 4강으로 이끈 히딩크는 2009년 2월 대표팀 감독직을 그대로 수행하면서 첼시 임시 감독이 됐다. 루이스 펠리페 스콜라리 감독의 뒤를 이은 히딩크는 자신이 지휘한 13경기 중 무려 11경기에서 승점 3점을 따내 리그 3위를 차지했다. 게다가 FC 바르셀로나 미드필더 안드레스 이니에스타에게 경기 막판 통한의 결승골을 허용하지 않았더라면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에도 진출할 수 있었다. 자신이 마지막으로 지휘하는 경기가 홈 구장에서 열렸을 때 첼시 팬들의 우레와 같은 성원을 받았던 히딩크는 에버튼 FC와의 FA컵 결승전에서 2-1로 승리, 실로 멋지게 대미를 장식하며 첼시 지휘봉을 내려놨다.

웸블리에서 정상에 오른 후 히딩크는 "세계 축구의 메카인 웸블리에서 FA컵 정상에 오르다니, 믿을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최종 업데이트: 12년 11월 29일 16.03중앙유럽 표준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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