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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데오톤을 통해 본 헝가리의 유럽무대 도전사

기사발행: 2012년 12월 4일, 화요일, 10.30중앙유럽 표준시
비데오톤 FC가 헝가리 클럽으로서는 사상 처음으로 UEFA가 주관하는 클럽대항전 조별리그 생존을 노리고 있다. UEFA.com이 유럽 무대에서 주목할 만한 족적을 남긴 헝가리 팀과 선수, 그리고 지도자를 돌아보는 시간을 마련했다.
기사 : 부다페스트/매튜 왓슨-브로튼 & 마르톤 디니에스
비데오톤을 통해 본 헝가리의 유럽무대 도전사
1960년 유럽피언 컵 결승전에서 레알 마드리드 소속으로 아인트라흐트전에서 PK골을 넣은 페렌츠 푸스카스 ©Getty Images
 
 
기사발행: 2012년 12월 4일, 화요일, 10.30중앙유럽 표준시

비데오톤을 통해 본 헝가리의 유럽무대 도전사

비데오톤 FC가 헝가리 클럽으로서는 사상 처음으로 UEFA가 주관하는 클럽대항전 조별리그 생존을 노리고 있다. UEFA.com이 유럽 무대에서 주목할 만한 족적을 남긴 헝가리 팀과 선수, 그리고 지도자를 돌아보는 시간을 마련했다.

이번 주에 비데오톤 FC가 헝가리 축구역사에 작은 흔적을 남길지도 모른다. 만약 32강에 진출한다면 UEFA가 주관하는 메이저급 대회 조별리그에서 살아남은 사상 첫 헝가리 클럽으로 남게 된다.

하지만 그들의 운명이 전적으로 그들의 손에 달린 것은 아니다. 목요일 저녁 UEFA 유로파리그 조별리그 G조 최종전에 돌입하는 비데오톤은 스포르팅 리스본을 반드시 꺾은 다음, 조 2위 FC 바젤 1893이 KRC 겡크와의 경기에서 삐끗하기만을 기대해야 한다. 11월 22일 홈에서 열린 겡크와의 경기에서 패했던 포르투갈 출신 지도자 파울루 소사는 "이젠 일이 훨씬 어렵게 됐다는 사실을 안다"고 말했지만 현재 바젤에 승점 2점 뒤진 비데오톤의 희망이 여전히 사라지지 않았다고 힘주어 말했다.

만약 헝가리 클럽 비데오톤이 모두의 예상을 깨고 조별리그를 통과해 녹아웃 무대에 진출한다면 인상적인 행보로 UEFA컵 결승전에 나아갔던 1985년의 업적에 비견될 만하다. 비록 결승에서 레알 마드리드 CF를 만나 합계 3-1로 준우승에 그쳤지만 말이다.

이제부터 가장 높은 수준의 유럽 클럽대항전에서 헝가리 출신 선수와 지도자, 팀으로서 첫 번째 흔적을 남긴 다섯 사례를 살펴보도록 하자.

● 바사스 SC, 1957/58
메이저급 유럽 클럽대항전에서 사상 처음으로 준결승에 진출한 헝가리 클럽

1950년대 헝가리 정치계의 대변동 속에 바사스 SC는 유럽 무대에서 처음으로 뚜렷한 족적을 남긴 헝가리 클럽이 됐다. PFC CSKA 소피아와 BSC 영 보이즈, 그리고 AFC 아약스를 누르고 유럽피언 챔피언 클럽스 컵 준결승에 올라 레알 마드리드와 격돌한 것. 산티아고 베르나베우에서 열린 1차전에서, 바사스는 알프레도 디 스테파노에게 해트트릭을 허용하며 4-0으로 무너졌고, 이것으로 모든 운명이 결정된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당시 헝가리 챔피언 바사스는 2차전 킥오프를 알리는 휘슬이 울린 지 53분 만에 격차를 두 골로 좁혔고, 계속해서 맹렬하게 추격전을 펼쳤다. 그러나 결국 결승 진출권은 합계 4-2로 승리한 마드리드에게 돌아갔다.

● 페렌츠 푸스카스 (레알 마드리드 CF, 1959/60)
유럽 클럽대항전 결승전에서 '매치 볼'을 따낸 유일무이한 헝가리 선수

'전설' 푸스카스가 일궈낸 여러 업적 중 하나가 1960년 유럽피언 컵 결승전에서 홀로 네 골로 골 폭죽을 터뜨린 일이다. 결승에서 맞붙은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는 '더 갤로핑 메이저[맹렬히 질주하는 그라운드의 사령관이라는 의미가 담긴 푸스카스의 별칭]'라고 불리던 푸스카스의 날카로운 슛과 그의 공모자 디 스테파노의 활약 앞에 무너졌다. 아르헨티나 출신 디 스테파노 역시 해트트릭을 기록했지만 홀로 네 골을 터뜨린 푸스카스의 활약에 빛이 바랬다. 푸스카스가 이날 선보인 활약은 현역 시절 초창기 부다페스트 혼베드 FC와 헝가리 대표팀에서 일찌감치 대폭발을 일으켰던 그가 세계 축구의 정점으로 귀환했다는 사실을 공표하기에 차고도 넘쳤다.

● 난도르 히덱쿠티 (ACF 피오렌티나, 1960/61)
메이저급 유럽 클럽대항전 우승컵을 들어올린 사상 첫 헝가리 감독

1961년 UEFA가 주관하는 두 클럽대항전 우승컵은 모두 헝가리 출신 지도자가 지휘하는 클럽에게 돌아갔고, 그 첫 번째 주자는 현역 시절 헝가리 대표팀에서 공격수로 뛰었던 히덱쿠티가 이끈 이탈리아 클럽 피오렌티나였다. 피오렌티나가 컵 위너스 컵 정상에 오른 4일 뒤, 구트만이 이끄는 벤피카 역시 FC 바르셀로나를 누르고 유럽피언 컵을 정복했다. 레인저스 FC를 합계 4-1로 누르고 우승컵을 차지한 히덱쿠티는 피렌체에 연고를 둔 피오렌티나와 2년 계약을 맺었고, 그 한가운데서 우승을 차지하는 기쁨을 맛봤다. 이후 히덱쿠티는 헝가리로 돌아가 1964/65 시즌 교리 ETO FC를 이끌고 유럽피언 컵 준결승에 오르기도 했다.

● MTK 부다페스트, 1963/64
유럽 무대 결승전에 오른 사상 첫 헝가리 팀

MTK는 헝가리가 낳은 가장 위대한 선수 중 두 명인 페렌치 코박치스와 카롤리 산도르의 맹활약에 힘입어 PFC 슬라비아 소피아와 모토르 츠빅카우, 페네르바체 SK와 셀틱 FC를 꺾고 UEFA가 주관하는 클럽대항전 결승에 오른 최초의 동유럽 팀이 됐다. 브뤼셀에서 열린 결승전에서 스포르팅과 맞붙은 MTK는 산도르가 홀로 두 골을 넣었지만 난타전을 벌인 끝에 결국 3-3 무승부에 그쳤고, 2일 뒤 열린 재경기에선 이른 시간 스포르팅에 결승골을 허용, 준우승에 만족해야만 했다.

● 플로리안 알베르트 (페렌츠바로시 TC, 1967)
유일무이한 헝가리 출신 발롱도르 수상자

유럽에서 가장 뛰어난 스트라이커 중 하나이자, 오직 페렌츠바로시 TC 한 팀에서만 뛰었던 우아한 선수 플로리안은 10년 넘게 헝가리 공격수 계보 맨 앞자리를 차지했던 선수다. 그는 1965년 소속팀 페렌츠바로시를 인터-시티즈 페어즈 컵 정상으로 인도했고, 이후 페렌츠바로시는 지금까지도 유럽 무대에서 두 번째 우승컵을 차지하지 못했다. '황제'라는 별명을 지닌 플로리안은 1967년 한 경기 한 골 이상의 득점력을 과시하며 소속팀 페렌츠바로시를 헝가리 리그 정상으로 이끈 공로를 인정받아 그토록 탐냈던 '올해의 유럽 선수상'을 거머쥐었다.

최종 업데이트: 12년 12월 4일 12.10중앙유럽 표준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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